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수업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당황해서 스피커를 눌렀다
할매 목소리가 교실에 생중계됐다
핸우가? 할매다
와 말을 안하노? 여보시오, 여보시오
스피커를 끄려고 하자 선생님이 말렸다
애들이 킥킥댔다
나는 할매한테 끊으라고 속삭였다
안 들린다, 더 크기 말해라
니 아침에 타닝매까통가 뭐시기 안사 준다꼬
삐끼가 밥도 안 묵고 내뺐제?
자꾸 그카믄 우짜노
할매가 니 좋아하는 쏘세지 넣고
도시락 싸 왔다, 나온나
배고플 낀데 요거 묵고 해라
애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수업시간이야, 끊어
맞나? 잘됐네. 그카믄 선상님 좀 바까 봐라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활짝 웃으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우리 핸우 땜시 선상님 애 마이 묵지요
죄송합니대이
철이 없어 그카지 나쁜 아는 아이라요
잘못하면 막 뭐라 카이소
잘 부탁드립니대이
선상님만 믿겄십니대이
할매는 지금 통화하면서 꾸벅꾸벅 절할 게 틀림 없다
아, 할매 때문에 창피해 미치겠다
식은땀이 흐른다
네네, 현우 할머님 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미소를 띤 채 휴대폰을 돌려준다
난 이제 죽었다 생각했는데,
아니다
현우는 좋겠네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하고는
얼른 나가보라고 손짓한다
나는 교문 쪽으로 달음박질쳤다
교문 앞에서 할매가 도시락을 흔들며
함박 웃는다
창밖으로 애들이 얼굴을 내밀고 팔을 흔들며
함성을 지른다
우리 할매 오늘 스타 됐다
갑자기 눈이 맵다
코도 맵다
에잇, 이따 집에 가서
할매한테 한바탕 퍼부을 거다
정연철 시인의 <교실에 할매 잔소리가 생중계 되다>
세상에 치고, 사람이 미운 그런 헛헛한 날엔
나만을 바라봐 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할머니처럼 촌스럽고, 투박해도 한없이 푸근한 마음,
잔소리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사랑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