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3/25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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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오후 네 시 삼십 분. 동네 산책로를 걷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짚 앞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나무 앞에서 쉼을 가집니다. 나무는 수령 250년이 넘는 오래된 향나무입니다. 울타리는 사철나무로 둘러싸여 향나무와 더불어 사시사철 푸름을 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평화롭게 합니다. 향나무 앞에는 편히 쉴 수 있는 정자와 벤치. 그리고 운동기구 몇 가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허리와 다리가 부실해 그곳에서 주로 허리 돌리기와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그러다 벤치에 앉아 나무를 한참 올려다보며 나무에게 묻습니다. "나무야, 너는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니?" 나무는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다 아니, "너는?" 이라고 오히려 본인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하늘을 나는 지친 새가 둥지를 틀 수 있는 넉넉한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 라고 속으로 되뇝니다. 자연의 순환 앞에 품위를 더해가는 건, 긴 세월 풍파를 꼿꼿하게 견뎌내고 초월과 해탈의 경지에 오른 나무만 한 게 있을까요. 나무가 좋아하는 건 햇살과 바람입니다. 햇살 한 줌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바람이 온갖 칭찬을 늘어놓으며 넉살을 떨어도 나무는 우쭐대거나 으스대지도 않습니다. 그저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숲이 수런거릴 정도이지요. 가슴이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면 나무숲을 즐겨 찾습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깊음 숨을 몰아 쉴 때마다 푸른 제 숨을 거저 주며 오롯이 사는 일에 열중하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견뎌오고 잘 버텨내었잖아. 이젠 괜찮을 거야!" 위로하는 듯합니다. 내일도 동네 산책로를 거닐 것이고, 오랜 세월 천둥 벼락을 품어낸 나무를 숙연한 마음으로 올려다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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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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